스위스의 수도 베른은 유럽의 다른 번화한 수도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늑하고 고즈넉한 골목, 중세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건물들, 그리고 조용하게 흐르는 아레 강이 베른만의 매력을 완성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 관광과 도시 곳곳에 숨겨진 예술적 분수의 매력, 그리고 베른을 상징하는 곰 공원을 중심으로 베른의 매력을 소개합니다.
조용한 수도 베른 탐방기: 구시가지 관광
베른의 구시가지는 도심이지만 수백 년 전의 시간이 그대로 멈춘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 지역은 1191년에 처음 도시로 조성된 이후 수차례의 화재와 복원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중세 도시의 원형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베른의 가장 큰 특징은 건물들이 일관된 붉은색 기와지붕을 유지하고 있고 거리 양편에 길게 이어진 아케이드는 무려 6km에 달해 유럽에서 가장 긴 아케이드 거리 중 하나입니다. 이 아케이드 덕분에 비나 눈이 오는 날에도 쾌적하게 쇼핑이나 산책을 즐길 수 있습니다. 크람가세(Kramgasse)와 마르크트가세(Marktgasse)는 구시가지의 중심 거리로 다양한 상점, 전통 제과점, 유서 깊은 서점들이 위치해 관광객과 현지인 모두에게 사랑받는 명소입니다. 구시가지 중심에는 치트글로게(Zytglogge)라는 중세 시계탑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13세기 후반에 세워진 이 탑은 매 시 정각이 되면 움직이는 인형들이 등장해 시간의 흐름을 알립니다. 이 시계탑은 단순한 시간표시 장치 그 이상으로 베른의 정치와 상업의 중심이었던 상징적인 공간이며 오늘날에는 내부를 견학할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어 역사와 기계장치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장소입니다. 베른 구시가지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아레 강과의 조화입니다. 도시 전체가 강의 곡선을 따라 부드럽게 휘어져 있는데 이 덕분에 다양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도시 전경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특히 로제가르텐(Rosengarten, 장미정원) 전망대는 베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로 일출이나 일몰 시간대에 방문하면 고요한 구시가지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장면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중세시대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이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있으며 그 이유는 단순히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도시 전체가 조화롭게 변화하며 역사적 가치를 지켜냈기 때문입니다. 주민들이 실제로 거주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는 이 구역은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살아있는 공간입니다.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골목 안쪽의 작은 갤러리에서 지역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여유도 베른 구시가지가 주는 특별한 경험입니다. 다른 유럽 수도들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반면 베른은 조용하고 단단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느린 여행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완벽한 목적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베른의 분수
베른을 여행하다 보면 거리마다 독특한 형태의 분수들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이 분수들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도시의 역사와 문화, 시민들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예술 작품이자 문화유산입니다. 특히 구시가지 거리 중간중간에 위치한 이 분수들은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그 당시의 조각 기술과 예술 감각을 그대로 보여주며 현재까지도 그 기능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합니다. 베른에는 약 100여 개의 분수가 존재하며 이 중에서도 11개의 분수가 조각상 형태를 갖춘 대표적인 역사적 분수입니다. 이 분수들은 도시의 주요 인물, 신화 속 캐릭터, 사회 풍자 등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각각의 분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와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사육사 분수(Kindlifresserbrunnen)입니다. 한 남성이 어린아이를 삼키는 충격적인 장면을 묘사한 이 분수는 중세 유럽의 어두운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아이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기능도 겸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 하나의 상징적인 분수는 곰 분수(Bärenbrunnen)로, 베른이라는 도시 이름이 곰(Bär)에서 유래된 만큼 곰은 도시를 대표하는 동물입니다. 이 분수에는 귀여운 곰들이 장식되어 있으며 도시의 유래와 전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많은 관광객들에게 사진 명소로 인기가 높습니다. 이 외에도 사법 분수(Justitiabrunnen)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티아가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법과 질서의 중요성을 상징합니다. 이 분수들은 단순히 거리의 장식품을 넘어서 시민 생활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식수 공급의 역할을 하기도 했고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커뮤니티 중심지로 기능하기도 했습니다. 현재에도 여름철이 되면 분수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 휴식을 취하거나 아이들이 분수 주변에서 뛰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베른의 분수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체로서 이 도시가 어떻게 역사와 현대를 조화롭게 유지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베른을 여행하면서 분수 하나하나를 찾아다니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각각의 분수가 놓인 거리마다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하나의 문화 탐방 코스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거리 예술이 도심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는 점에서 베른은 단순히 스위스의 수도를 넘어서 예술과 역사, 생활이 공존하는 살아있는 도시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곰 공원
스위스의 수도 베른은 도시 이름 자체가 곰을 뜻하는 독일어 ‘Bär’에서 유래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전설은 도시를 세운 공작이 첫 사냥에서 곰을 잡았고 이를 기념하여 도시 이름을 ‘베른’이라 지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곰은 베른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자리잡았고 도시 곳곳에서 곰과 관련된 조형물이나 이미지, 기념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위치한 장소가 바로 ‘곰 공원(BärenPark)’입니다. 곰 공원은 아레 강변에 위치한 자연 친화적인 공간으로 2009년 기존에 존재하던 좁은 콘크리트 곰 우리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전의 곰사는 19세기부터 존재했지만 현대적 동물복지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에 따라 베른시는 보다 넓고 생태적인 환경에서 곰들이 살 수 있도록 공원을 새롭게 조성한 것입니다. 현재 곰 공원은 약 6,000㎡에 달하는 넓은 면적을 자랑하며 곰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다양한 나무, 언덕, 수로 등이 설계되어 있습니다. 공원에는 현재 브루(Björn), 핀(Finn), 우르슬리(Ursina) 등 여러 마리의 곰이 서식하고 있으며 방문객들은 유리 울타리 너머로 곰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곰들이 나무에 오르거나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는 장면은 어린아이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며 사진 애호가들에게도 사랑받는 촬영 포인트입니다. 무엇보다 이 공원은 동물원의 개념을 넘어서 야생동물이 인간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곰 공원 내부에는 곰과 관련된 교육 자료를 전시한 전시관도 마련되어 있으며 방문객들은 곰의 생태, 보호 활동, 그리고 베른과 곰의 역사적 관계에 대해 깊이 있는 정보를 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공원 옆에는 로제가르텐(Rosengarten)과 이어지는 산책로가 있어 자연과 도시의 조화를 느끼며 여유롭게 걷기에 매우 적합한 장소입니다. 이곳은 현지인들의 산책 코스이자 여행객들의 휴식처로 자리 잡고 있으며 계절마다 다른 매력을 선사합니다. 곰 공원은 단순한 관광 명소를 넘어 베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철학을 담고 있는 공간입니다. 도시 중심부에서 이렇게 넓은 공간을 동물에게 내어주었다는 사실은 베른 시민들의 동물과 자연에 대한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곰 공원을 찾는다는 것은 단지 곰을 구경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베른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따뜻한 가치관과 조용한 아름다움을 직접 체험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베른은 화려한 관광 명소 대신 깊이 있는 역사와 조용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도시입니다. 구시가지의 아늑한 거리, 예술적 가치가 담긴 분수,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 곰 공원까지, 베른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집니다. 번잡한 여행지에 지쳤다면 베른의 조용한 매력 속에서 진정한 휴식을 누려보시기를 바랍니다.